하루하루하늘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숲을지나서 2009. 3. 26. 16:14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Love That Universe(1961)

Arthur C. Clarke

 

친애하는 대통령, 수상 및 행성 대사 여러분, 위기의 순간에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영예롭고 중대한 책무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충격을 받았으며 들려오는 이런저런 소문에 당황하고 계신 것을 저는 알고, 또한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존재가, 아니 지구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이 시점에서 가지고 있는 온갖 선입관들을 모두 접어 두시라고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저는 오래된 속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라.” 바로 이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용감하게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감정에 논리가 휘둘려서도 안 됩니다. 진정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논리로써 감정을 좌우해야 합니다!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희망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이건 우주 정거장 ‘안티진’에 있는 제 동료들이 발견한 놀라운 사실 덕분입니다. 그들이 제출한 보고서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은하계 중심에 있는 초문명과 연락을 취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우리의 존재를 알릴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정말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명왕성 외곽에서 행성을 탐색하다가 ‘흑색 왜성’의 존재를 안 것은 불과 10년 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고작 90년 후, 그것은 근일점을 지나 다시 우주 공간으로 나가게 됩니다. 산산이 파괴되어 버린 태양계를 뒤로 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지닌 자원,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겨 왔던 자연을 통제하는 능력을 전부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의 궤도를 한 치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20세기 말에 이른바 ‘신호 항성’을 발견한 이래 우리는 우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에너지 원천을 사용할 수 있는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몇몇은 분명히 마젤란 성원에서 처음으로 우주적인 규모의 구조물을 발견했을 때 과학자들이, 그리고 나중에는 인류 전체가 느꼈던 경악을 떠올리고 계실 겁니다.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항성 규모의 구조물이었지요. 아직도 우리는 그게 어떤 용도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엄청납니다. 우리 우주에 항성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돕기로 한다면 질량이 지구의 몇 천 배에 불과한 흑색 왜성 정도의 천체를 움직이는 건 아이들 장난에 불과할 겁니다…… 제가 지금 애들 장난이라고 했습니까? 맞습니다. 말 그대로 아이들 장난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모두 초문명들을 발견한 후 격렬하게 맞붙었던 논쟁을 분명히 기억하실 겁니다. 의사소통을 시도해야 하는가, 아니면 눈에 띄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물론 그들은 이미 우리에 대해 모두 알고 있을지도, 혹은 귀찮아 할지도, 심지어 상당히 불유쾌한 방법으로 반응할지도 모릅니다. 접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막대하겠지만 위험 또한 큽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잃을 것이 없습니다. 얻을 것만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문제를 장기간의 철학적 관심사로만 만들게 하는 점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더라도 그들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강력한 전파 송신기를 만들 수는 있지만, 가장 가까운 초문명도 7000광년이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응답하더라도 우리가 대답을 듣기까지는 1만 4000년이 걸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도움도 위협도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측정할 수 없는, 거의 무한한 속도로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그런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비록 해독을 시도조차 못하고 있지만 그들의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전자기파가 아닙니다. 그게 무엇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름이 너무 많은지도 모르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텔레파시니 초능력이니, 또는 여러분이 무엇이라 부르고 싶어하든 그것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들에는 뭔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구에서 그런 현상에 관한 연구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건 당연한 일입니다. 지구에는 수십억 개의 정신이 내지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어서 신호란 신호가 전부 묻혀 버렸던 것입니다. 우주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제한적으로나마 이루었던 성과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보일러 공장에서 음악의 원천을 발견한 것과 같은 일이죠. 우리가 지구를 뒤덮고 있는 정신적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진정한 초심리학을 성립할 어떤 희망이라도 있었지요.

그런 이유로 우리는 2억 8800만 킬로미터 거리와 거대한 몸집의 태양이 정신파를 막아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바로 그곳, 인공 소행성인 ‘안티지오스’에서만이 우리는 미약한 정신파를 감지하고 측정하며 그것이 전파되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보아 그 법칙은 아직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인 사실은 분명히 파악했습니다. 그런 현상을 믿었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추측해왔듯이, 정신파는 순수한 의지력이나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사고가 아니라 감정의 상태에 의해 발생합니다. 따라서 과거에 있었던 초현상에 대한 기록이 죽임이나 재난과 같은 순간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공포는 강력한 원동력입니다. 드문 경우지만 공포는 주변의 잡음을 능가하기도 하지요.

일단 이런 사실을 파악하자 진전은 더욱 빨라졌습니다. 우리는 개인에서 시작해서 단체에 이르기까지 인공적으로 감정 상태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거리에 따라 신호가 얼마나 약해지는지 측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토성까지는 검증된 정량적인 이론을 만들어낸 상태입니다. 우리는 우리 계산을 항성간의 거리를 뛰어넘을 정도로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옳다면 우리는 그 즉시 은하계 전체에 울려 퍼질…… 외침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분명히 누군가가 응답할 것입니다!

그 정도의 강렬한 신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조금 전에 전 공포가 강력한 원동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류 전체가 동시에 두려움에 사로잡힌다고 해도 그 신호는 2000광년 정도밖에 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 그 네 배의 거리이며,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공포보다 훨씬 강력한 유일한 감정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러나 최소한 10억 명의 인간이 협동해야 하며 그 순간은 초 단위까지 일치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사소한 기술적 문제들은 제 동료들이 모두 해결했습니다. 간단한 전기 자극 장치는 이미 20세기 초부터 쓰이고 있으며, 행성간 통신망을 이용하면 여러 곳에서도 동시에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필요한 장비는 한 달 이내에 대량생산해 낼 수 있고, 그걸 사용하는 방법은 몇 분이면 배울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날’을 위한 심리적 준비를 마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겁니다…….

여러분, 바로 그게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우리 과학자들은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항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분노하는 사람도, 협조를 거절하는 사람도 있으리라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과연 그렇게 기분 나쁜 일입니까? 반대로 우리 중 많은 수는 여기에 일종의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적인 정의가 실현되는 거라고나 할까요.

인류는 지금 궁극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과거에 우리의 생존을 항상 보장해 왔던 본능에 충실하는 것이 과연 올바르지 않은 일일까요? 오래전, 지금처럼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살았던 한 시인은 오늘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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