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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스펀 뒤늦은 반성

숲을지나서 2008. 10. 25. 08:45

그린스펀 뒤늦은 반성

美 청문회서 시장만능 경제관 오류 인정
파생상품 규제 강화 반대도 "잘못" 시인


뉴욕=권구찬 특파원 chan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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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글로벌 금융 위기와 관련, 시장은 정부의 규제 없이도 스스로 규율 할 수 있다고 믿어온 자신의 시장만능 경제관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린스펀은 또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강화에 반대한 것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잘못이 있다"고 시인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23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의 감독 및 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40년 이상 자유시장 이론은 매우 잘 작동했기 때문에 이번 금융 위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금융기관이 스스로 시장혼란을 막고 주주를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과도한 리스크를 억제하는 데는 정부 규제보다 민간 규제가 훨씬 나은 것으로 입증됐다"던 2005년 5월 연설을 뒤집는 것으로 마에스토로(거장)로 추앙받는 그린스펀의 명성에 큰 흠집을 남기게 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그린스펀은 이날 의원들로부터 정책 실패에 대한 호된 질책과 추궁을 받았으나, 자신의 책임론에 대해서는 특유의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교묘하게 피해갔다.

그린스펀은 "어떤 감독기관이라도 한 세기 만에 올까 말까 하는 '신용 쓰마니'를 예상하지는 못할 것"이라면서 "당국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완벽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개인적 책임론을 피해갔다.

헨리 왁스맨 위원장은 이에 대해 "당신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초래한 무책임한 대출 관행을 막을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며 "지금 우리 경제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왁스맨 위원장은 급기야 파상상품에 대한 규제를 반대한 것과 관련,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냐"는 직설적 질문에 그린스펀은 "부분적으로 그렇다"며 마지못해 시인했다.

그린스펀은 "금융 기관들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주주들과 투자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며 "이번 금융위기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나타났다"고 진술했다.

한편 그린스펀은 청문회 개최에 앞서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지의 자료를 배포했다.

 

 

 

(월드피플)속죄(?)한 `마에스트로` 그린스펀
앨런 그린스펀 前 FRB의장, 위기촉발 과오인정
탈규제론 일부 잘못.."시장이론 허점발견..충격"
궁지 몰리는 자유시장경제
입력 : 2008.10.24 16:05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서브프라임에서 불붙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마에스트로`를 추락시켰다.

18년간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올해 82세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재임기간은 다사다난했지만 그의 처방은 대개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받았다. 
 
취임하자마자 두 달 만에 맞은 블랙먼데이(1987년 10월17일),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1년 9.11 테러 등 시장을 위협한 대형 사건들은 그린스펀 전 의장의 손에 의해 제대로 처리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는 그린스펀 전 의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위력을 실어줬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다"는 고사가 떠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 해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그린스펀 전 의장의 수난이 계속됐다. 닷컴 버블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택한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버블로 모습만 바꿨고, 그것이 현재의 위기로 터지고 말았다는 것. 또한 버블의 위험성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규제하지 않은 것 또한 지적을 받고 있다. 비난은 빗발쳤다. 하지만 그는 늘 의연(?)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결국 자신의 경제관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말았다. 자신의 자유 시장경제 이론에서 허점을 발견했으며, 그것은 충격이었다고 밝혔다.

◇ 그린스펀 "허점 발견했다, 충격이었다" 고백

헨리 왁스맨 하원 정부 감시 및 개혁 위원회 위원장은 23일(현지시간) 청문회에서 그린스펀 전 의장이 모기지 규제에 대해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며 몰아붙였다. 

▲ 앨런 그린스펀 前 美 FRB 의장
왁스맨 위원장은 "FRB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불러온 비이성적인 대출 관행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당신은 탈규제를 대표해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하자 그린스펀 전 의장은 "부분적으로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에 대해 자신의 시장경제 이론에서 `허점을 발견했다(Yes, I found a flaw)`면서 "40년 이상 이같은 이론이 잘 들어맞았다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또한 크레디트 디폴트 스왑(CDS)과 같은 신용 파생상품에 대해 더 규제를 했어야 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파생상품 시장은 잘 작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청문회 출석에 앞서 배포한 자료를 통해서도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임시절(1987년~2006년) 주장했던 것과 상반된 입장이다. 그는 지난 2005년 5월 연설을 통해 "민간 차원의 자체적인 규제가 정부의 규제보다 과도한 리스크 부담을 방어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그러나 "규제감독 당국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완벽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또 "우리는 전망을 요구하는 어떠한 분야에서도 완벽을 기할 수 없다"며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절대적인 확신이나 전지전능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존 야머스 하원의원은 그린스펀 전 의장, 존 스노 전 재무장관,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이들은 세 명의 빌 버크너(Bill Buckner)라고까지 지적했다.

1986년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어이없이 다리 사이로 공을 놓쳐 보스턴 레드삭스를 뉴욕 메츠에 패하게 만들었던 1루수 빌 버크너는 `실수의 대명사`로 불린다. 만약 그린스펀 전 의장에 대한 팬이 봤다면 시쳇말로 `안습`이었을 청문회였다.

◇ 궁지 몰리는 자유시장경제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입장 변화는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금융위기 속에서 바뀌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관(觀)의 변화 기류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그의 `실책` 인정은 자유와 탈규제를 신봉해 온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오류를 `일부` 인정하는 것이기도 했던 것. 

중앙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주장한 존 메이나드 케인즈 이론이 급부상하고 있고, 영국 등 유럽을 중심으로 새로운 글로벌 경제 질서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란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신 브레튼우즈 체제는 사실상 전세계적인 규제와 감독 강화로, 시장 자율의 질서에 의존했던 미국식 신 자유주의에 배척된다. 

반면 그린스펀 전 의장 직전에 의장을 했던 폴 볼커는 그린스펀 전 의장과 반대쪽의 정책을 펼쳤다는 이유로 최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절정에 이르자 강력한 긴축 정책을 폈던 그는 경기후퇴를 맞게 했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물가만큼은 확실히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특히 금융부문의 탈규제에 대한 위험을 예견했었다는 점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은퇴후 낚시로나 소일하던 그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의 경제 고문으로 부활, 오바마 집권시 재무부 장관을 할 것이란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관련기사 ☞ 오바마 만난 볼커 前 연준의장 `제2의 전성기`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학 교수,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 `그린스펀의 반대편` 주장을 해 왔던 학계 인사들도 모두 요즘 스타가 됐다. 그동안에도 `그린스펀 저격수`로 불려온 스티글리츠 교수는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 기고문에서도 정부의 감독·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관련기사 ☞스티글리츠의 `금융위기 5대 해법`   스티글리츠 "美금융위기는 그린스펀·부시 때문"
 
스티글리츠 교수는 유엔이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만드는 태스크포스(TF)도 이끌게 됐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청문회에서 미국 경제의 어려움이 수 개월 동안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결국은 견조한 금융 시스템을 만들면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낙관론은 잊지 않았다. 그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인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